최신 기술로 훌륭하게 풀어낸 60년 역사
PHIATON 900 LEGACY
Editor: 송정은
Photographer: 이선우
한국에서 오디오 기기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등 관련 업계에서 일한다고 하면 징글징글하게 따라 붙는 단어 중 하나는 ‘척박’이 아닐까. 그렇게 척박한 토양 위에 흥망성쇠와 부침이 그치지 않는 국내 오디오 업계라지만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을 거듭하며 선도적 위치에 서 있는 제조사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이어폰, 헤드폰에 관심 좀 있는 한국의 음악 애호가라면 모를 수 없는 ‘크레신(Cresyn)’. 1959년 ‘대한축침제작소’를 설립하며 소리를 내는 기기를 만들기 시작한지 어언 60년. 크레신의 포터블 오디오 브랜드 ‘피아톤(PHIATON)’이 그들의 역사를 기념할만한 제대로 된 ‘Anniversary’ 제품을 출시했기에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제대로 만든 신제품,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다
국내에서 포터블 오디오와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한번쯤은 크레신을 거쳐간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만큼 한국의 포터블 오디오 업계에서 크레신이라는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피아톤은 크레신이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2008년에 론칭한 중고가 포터블 오디오 브랜드다. 특히 한국 수영의 리빙 레전드 박태환이 착용하고 나온 피아톤의 1세대 헤드폰 ‘MS400’이 화제가 되면서 피아톤의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지게 됐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피아톤은 이후 글로벌 음향회사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술력과 노하우, 이를 테면 상당한 이형(耳形, 귀 모양)의 양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꼼꼼하고 세심한 음향 설계, 각종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는 디자인 감각까지 인정받으며 오히려 해외에서 훨씬 더 주목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다.
피아톤은 블루투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하는 무선 포터블 오디오 시장 트렌드 변화에도 대단히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해왔다. 2019년에 출시된 충전케이스가 블루투스 스피커 역할까지 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주목 받은 ‘BT700’, 이른바 볼트 제품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 뿐만 아니라 피아톤은 그들의 1세대 무선 제품에도 적극적으로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적용하는 등,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는 아니더라도 결코 뒤쳐지지는 않으며 종종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멋진 가성비를 지닌 제품을 선보이며 음악 애호가들의 시선을 강하게 붙잡고는 했다.
그런데 방금 언급한 2019년 출시작 BT700 무선 이어폰 제품 이후 2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피아톤은 다소 잠잠했다. 모체인 크레신 자체적으로 보면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하는 등 움직임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피아톤의 신제품 소식은 듣기 힘들었다. 그러던 그들이 2021년 상반기 드디어 오랜만에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름은 ‘900 LEGACY’. LEGACY라는 뜻은 잘 알다시피 ‘유산’이다. 그리고 그 앞에 붙은 숫자 900.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크레신과 피아톤에서 출시 된 모든 제품을 뒤져봐도 이 모델에 붙은 숫자가 가장 높은 숫자이다.
아마도 그들이 그 동안 쌓아온 모든 노하우와 기술을 총집약한 가장 ‘높은’ 수준의 제품이라는 뜻을 담은 숫자라고 유추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그런데 이 제품을 받아서 한 달 정도 사용해보니 억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숫자를 부여했어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수작임에 틀림 없는 제품이다.
1세대 헤드폰의 역사를 공유하는 디자인
900 LEGACY의 구성품과 외형을 살펴보자. 박스 겉면에 900 LEGACY에 대한 여러 스펙들이 알기 쉽게 적혀있는데 꽤 놀라운 스펙들이 있었다. 이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겠다. 휴대폰 케이스라기 보다는 악기 케이스를 연상시키는 하드 케이스에서 본체를 꺼내 들어보니 일단 굉장히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 무게도 256g이니 무선 헤드폰 중에서도 꽤 가벼운 축에 속한다. 이어패드와 헤드밴드 부분을 만져보니 메모리 폼의 감촉이 느껴졌다. 헤드폰 구입 시 착용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필자로서는 이 부드러운 메모리 폼의 감촉은 일단 합격을 주고 갈 만 했다. 장력도 그리 세지 않은 것을 보니 착용감은 상당히 좋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막상 착용을 해보니 예상은 당연히 적중했다. 적중 정도를 넘어서 900 LEGACY의 착용감은 그 동안 수없이 스쳐 지나간 헤드폰들 중에서도 매우 압도적인 편안함을 선사했다.
외형 디자인을 살펴보니 이어컵 전면에 익숙한 카본 파이버 패턴 디자인이 눈에 띈다.이 디자인이 바로 그들의 초창기 히트작, 이른바 ‘박태환 헤드폰’이라 불렸던 MS400에서 봤던 그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 역사를 공유한 것을 통해 900 LEGACY가 크레신의 오랜 음향업계의 업력을 기념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 시켜주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가본 파이버 패턴 디자인을 제외하면 디자인이 익숙하다. 매끄러운 유선형 이어컵, 그리고 골드컬러의 이어컵 테두리 마감과 PHIATON 로고의 위치. 비단 필자의 생각만은 아니고 많은 이들이 900 LEGACY의 디자인을 보고 무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의 자칭 타칭 최강자, 소니의 WH-1000XM 시리즈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예쁜 디자인인데 창의적이지는 않다고 해야 할까. 후술할 대단한 성능 부문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아쉬운 점을 뽑으라고 하면 특정 제품을 떠오르게 만드는 외형 디자인을 언급하겠다. 카본 파이버 패턴 디자인은 살리되, 이어패드 터치 조작을 위해서인지 이어컵 겉면에는 투명한 유광 소재가 이 특유의 패턴을 덮고 있다. 이 제품을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줬을 때 필자보다 조금(?) 어린 20대 중후반의 음악 애호가들 같은 경우 매트한 컬러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 그런지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카본 패턴 디자인의 이어컵 위로 골드 컬러의 'PHIATON' 로고가 눈에 띈다.

구성품으로는 캐링 하드 케이스, USB-C 타입 케이블, 3.5mm 유선 케이블이 있다.
야무지고 영리하고 풍부하고... 깔 게 없는 성능 특성
미리 말하지만 900 LEGACY에 대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라면 방금 언급한 디자인적 창의성 부족, 그리고 따로 출시하지 않은 전용 어플리케이션의 부재 이 딱 두 개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제품 칭찬을 좀 해보려고 한다.
900 LEGACY에는 웬만한 무선관련 최신 스펙들은 거의 다 들어있다. 블루투스 최신 5.1이 그 시작이며 지원 코덱의 경우 apt-X HD에 까지 이른다(아이폰 사용자들은...). apt-X HD 코덱의 경우 24bit/48kHz 고음질 음원까지 커버하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유저라면 무척 환영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선 제품 기능 중 가장 선호하는 ‘멀티포인트 커넥션’도 지원한다. 이 기능은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여러 대의 소스기기에 ‘등록’만 해놓는 ‘멀티 페어링’과는 전혀 다른, 훨씬 상위 개념의 기술임은 아마 본지 독자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랩탑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동시에 900 LEGACY를 페어링 해놓고 랩탑에 저장해 놓은 고음질 음원들을 900 LEGACY로 들으며 리뷰 기사를 적다 가도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오면 굳이 헤드폰을 벗을 이유가 없다. 알아서 스마트폰 페어링 모드로 자동 전환이 되기 때문. 오른쪽 패드를 두 번 툭툭 치면 바로 전화 연결이 된다. 진짜 정말 너무 편하다. 그런데 이 멀티 포인트 기능은 900 LEGACY 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대의 제품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헤드폰을 쓰고 벗는 동작에 따라 음악이 켜지고 꺼지는 스마트 재생 기능도 지원한다. 우측 패드의 터치 감도도 괜찮다.

900 LEGACY의 왼쪽 유닛에 전원 버튼(길게 누르면 블루투스 페어링, 두번 누르면 남은 배터리 용량 알림음), NC(한번 누름에 따라 노이즈캔슬링/트렌스페어린시 변경) 버튼이 있다.
주목할 만한 기술적 특성은 노이즈캔슬링이다. 이미 다양한 제품에서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시도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던 피아톤이었던 만큼, 노이즈캔슬링 제품이 널리고 널린 2021년 시점에서 일정 수준이상의 노이즈캔슬링 성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충분히 기대치에 충족했다. 노캔 헤드폰의 최강자 소니의 1000X 시리즈나 11단계의 노캔 조절 기능을 제공하는 보스 제품과 같은 괴수급들과 비교는 무리지만 가격대를 생각하면 그들의 8~90퍼센트 성능치 정도는 보여주기에 시끄러운 대중교통 출퇴근 환경에 노출된 사용자들이라면 큰 불만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전용 앱 없이 왼쪽 이어컵의 NC 버튼만으로 콘트롤이 가능한 점, 버튼을 누름에 따라 노캔 On/트렌스페어런시 On 두 가지로만 이용가능한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유저들도 있었다. 필자의 경우 소음 빡센(?) 것으로 유명한 서울지하철 5호선을 출퇴근용 교통수단으로 가장 오래 이용하는데, 900 LEGACY 정도면 그 시끄러운 마의 구간을 비교적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900 LEGACY의 착용감은 굉장히 우수하다. 헤드밴드와 이어패드에는 메모리 폼 소재가 사용됐다.

제대로 된 Fun Sound 튜닝. 음악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다
900 LEGACY의 사운드 퍼포먼스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다. 솔직히 이 제품은 사용용도나 출시목적을 생각해보면 극도의 플랫함을 추구하는 모니터링 성향으로 음색을 튜닝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저역과 고역의 데시벨을 높이는 V자 튜닝, 최근 들어 ‘펀 사운드’ 튜닝이라고 많이 불리는 음색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맞는 제품인데 관건은 적절한 ‘정도’를 찾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900 LEGACY는 그 정도를 아주 잘 찾은 제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저음의 양은 풍성하고 다소 없었고 고음역대가 어느정도 화사함을 더해주면서 음악 듣는 재미를 배가 시켜준다. 이 모든 영역의 튜닝이 과하지 않고 딱 적당하다. 헤드폰 입문자나 중급자 정도 되는 소비자라면 ‘와 음질 좋다’라고 바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고 헤드폰 특유의 공간감 표현과 각 소리와 악기들의 정위감, 디테일한 악기 표현력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펀 사운드 튜닝이라 표현을 했다 보니 900 LEGACY는 최신 K-POP, 힙합 음악을 들을 때는 흠잡을 데 없이 우수한 사운드 성능을 표현하는데, 리뷰를 하면서 900 LEGACY에 대해 주목한 부분은 바로 ‘록 머신’과 ‘게이밍 헤드폰’으로서의 가능성도 엿보았다는 점이다.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메탈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메스그램’의 정규 1집 앨범 ‘Cheers for Failures’의 수록곡 ‘Rockstar’의 주요 감상 요소인 묵직한 킥드럼과 베이스기타의 저음 리듬 파트 부분이 육중하게 잘 들리며 곡 중간중간 기타리스트 유식의 오른손 스트로크 900 LEGACY는 Made In Korea 무선 헤드폰의 우수한 성능을 증명할 수 있는 첫 번째 예시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사운드도 묻히지 않고 적절한 위치에서 선명하게 잘 잡아낸다. 육중한 중화기와 같은 디스토션 사운드를 내는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 아래에 탄력과 힘을 지닌 저음 리듬악기의 향연이 가득한 록 사운드를 좋아한다면 개인적으로 원픽으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운드 성능이다.
더불어서 저음역대 표현이 좋다보니 FPS 게임 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아무래도 레이턴시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게임 용으로 사용 시 기본 제공되는 3.5mm AUX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는데 재미있게도 이 경우 무선 연결 시 느껴진 펀 사운드 튜닝에서 조금 더 플랫한 성향으로 음색이 바뀌고 디테일은 더욱 살아나게 된다. 무선 연결을 하고 게임을 즐길 경우 900 LEGACY가 내는 적군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 지나치게 둔중한 느낌이었다면 유선 연결을 할 경우 그 밸런스가 딱 맞아떨어짐을 알 수 있었다. 이 제품을 구입한 헤비 게이머라면 가성비 좋은 USB 콘덴서 마이크 하나만 구비해 놓자. 굳이 게이밍 헤드셋 따로 안 사도 충분하다.
900 LEGACY는 Made In Korea 무선 헤드폰의 우수한 성능을 증명할 수 있는 첫 번째 예시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Massive한 배터리 성능으로 화룡점정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대단히 높은 배터리 효율이다. 노이즈캔슬링을 활성화 시켜도 무려 43시간의 배터리 타임을 자랑하며 유선 연결 후 노이즈캔슬링을 켜도 52시간, 거기에 10분 충전으로 4시간 사용이라는 대단히 효율 좋은 퀵 차지(Quick Charge)까지 지원한다. 데일리 헤드폰이라고 하면 900 LEGACY 정도 배터리 효율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상기한 여러 장점들을 30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으로 책정했다는 것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설명한 이 정도 스펙과 성능에 해외 브랜드 제품이었으면 이 가격은 아예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제대로 된 제품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피아톤의 의지와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노이즈캔슬링 무선 헤드폰 하나 들여놓을 생각하고 있다면 충분히 장바구니 1번에 넣어놓을 만한 제품이다.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뚜렷하게 많다. 추천 안 할 이유가 없다
CONTACT |
제조사 | 크레신(주)
|
TEL | 02-2041-2700
|
HOME | phiaton.co.kr
|
PRICE | 289,000 KRW |
#노이즈캔슬링헤드폰 #최강가성비 #피아톤 #900LEGACY #국산헤드폰 #멀티포인트페어링 #노이즈캔슬링
#PHIATION #크레신60주년 #강추헤드폰
최신 기술로 훌륭하게 풀어낸 60년 역사
PHIATON 900 LEGACY
Editor: 송정은
Photographer: 이선우
한국에서 오디오 기기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등 관련 업계에서 일한다고 하면 징글징글하게 따라 붙는 단어 중 하나는 ‘척박’이 아닐까. 그렇게 척박한 토양 위에 흥망성쇠와 부침이 그치지 않는 국내 오디오 업계라지만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을 거듭하며 선도적 위치에 서 있는 제조사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이어폰, 헤드폰에 관심 좀 있는 한국의 음악 애호가라면 모를 수 없는 ‘크레신(Cresyn)’. 1959년 ‘대한축침제작소’를 설립하며 소리를 내는 기기를 만들기 시작한지 어언 60년. 크레신의 포터블 오디오 브랜드 ‘피아톤(PHIATON)’이 그들의 역사를 기념할만한 제대로 된 ‘Anniversary’ 제품을 출시했기에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제대로 만든 신제품,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다
국내에서 포터블 오디오와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한번쯤은 크레신을 거쳐간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만큼 한국의 포터블 오디오 업계에서 크레신이라는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피아톤은 크레신이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2008년에 론칭한 중고가 포터블 오디오 브랜드다. 특히 한국 수영의 리빙 레전드 박태환이 착용하고 나온 피아톤의 1세대 헤드폰 ‘MS400’이 화제가 되면서 피아톤의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지게 됐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피아톤은 이후 글로벌 음향회사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술력과 노하우, 이를 테면 상당한 이형(耳形, 귀 모양)의 양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꼼꼼하고 세심한 음향 설계, 각종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는 디자인 감각까지 인정받으며 오히려 해외에서 훨씬 더 주목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다.
피아톤은 블루투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하는 무선 포터블 오디오 시장 트렌드 변화에도 대단히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해왔다. 2019년에 출시된 충전케이스가 블루투스 스피커 역할까지 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주목 받은 ‘BT700’, 이른바 볼트 제품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 뿐만 아니라 피아톤은 그들의 1세대 무선 제품에도 적극적으로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적용하는 등,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는 아니더라도 결코 뒤쳐지지는 않으며 종종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멋진 가성비를 지닌 제품을 선보이며 음악 애호가들의 시선을 강하게 붙잡고는 했다.
그런데 방금 언급한 2019년 출시작 BT700 무선 이어폰 제품 이후 2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피아톤은 다소 잠잠했다. 모체인 크레신 자체적으로 보면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하는 등 움직임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피아톤의 신제품 소식은 듣기 힘들었다. 그러던 그들이 2021년 상반기 드디어 오랜만에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름은 ‘900 LEGACY’. LEGACY라는 뜻은 잘 알다시피 ‘유산’이다. 그리고 그 앞에 붙은 숫자 900.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크레신과 피아톤에서 출시 된 모든 제품을 뒤져봐도 이 모델에 붙은 숫자가 가장 높은 숫자이다.
아마도 그들이 그 동안 쌓아온 모든 노하우와 기술을 총집약한 가장 ‘높은’ 수준의 제품이라는 뜻을 담은 숫자라고 유추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그런데 이 제품을 받아서 한 달 정도 사용해보니 억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숫자를 부여했어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수작임에 틀림 없는 제품이다.
1세대 헤드폰의 역사를 공유하는 디자인
900 LEGACY의 구성품과 외형을 살펴보자. 박스 겉면에 900 LEGACY에 대한 여러 스펙들이 알기 쉽게 적혀있는데 꽤 놀라운 스펙들이 있었다. 이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겠다. 휴대폰 케이스라기 보다는 악기 케이스를 연상시키는 하드 케이스에서 본체를 꺼내 들어보니 일단 굉장히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 무게도 256g이니 무선 헤드폰 중에서도 꽤 가벼운 축에 속한다. 이어패드와 헤드밴드 부분을 만져보니 메모리 폼의 감촉이 느껴졌다. 헤드폰 구입 시 착용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필자로서는 이 부드러운 메모리 폼의 감촉은 일단 합격을 주고 갈 만 했다. 장력도 그리 세지 않은 것을 보니 착용감은 상당히 좋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막상 착용을 해보니 예상은 당연히 적중했다. 적중 정도를 넘어서 900 LEGACY의 착용감은 그 동안 수없이 스쳐 지나간 헤드폰들 중에서도 매우 압도적인 편안함을 선사했다.
외형 디자인을 살펴보니 이어컵 전면에 익숙한 카본 파이버 패턴 디자인이 눈에 띈다.이 디자인이 바로 그들의 초창기 히트작, 이른바 ‘박태환 헤드폰’이라 불렸던 MS400에서 봤던 그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 역사를 공유한 것을 통해 900 LEGACY가 크레신의 오랜 음향업계의 업력을 기념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 시켜주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가본 파이버 패턴 디자인을 제외하면 디자인이 익숙하다. 매끄러운 유선형 이어컵, 그리고 골드컬러의 이어컵 테두리 마감과 PHIATON 로고의 위치. 비단 필자의 생각만은 아니고 많은 이들이 900 LEGACY의 디자인을 보고 무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의 자칭 타칭 최강자, 소니의 WH-1000XM 시리즈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분명 예쁜 디자인인데 창의적이지는 않다고 해야 할까. 후술할 대단한 성능 부문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아쉬운 점을 뽑으라고 하면 특정 제품을 떠오르게 만드는 외형 디자인을 언급하겠다. 카본 파이버 패턴 디자인은 살리되, 이어패드 터치 조작을 위해서인지 이어컵 겉면에는 투명한 유광 소재가 이 특유의 패턴을 덮고 있다. 이 제품을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줬을 때 필자보다 조금(?) 어린 20대 중후반의 음악 애호가들 같은 경우 매트한 컬러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 그런지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구성품으로는 캐링 하드 케이스, USB-C 타입 케이블, 3.5mm 유선 케이블이 있다.
야무지고 영리하고 풍부하고... 깔 게 없는 성능 특성
미리 말하지만 900 LEGACY에 대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라면 방금 언급한 디자인적 창의성 부족, 그리고 따로 출시하지 않은 전용 어플리케이션의 부재 이 딱 두 개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제품 칭찬을 좀 해보려고 한다.
900 LEGACY에는 웬만한 무선관련 최신 스펙들은 거의 다 들어있다. 블루투스 최신 5.1이 그 시작이며 지원 코덱의 경우 apt-X HD에 까지 이른다(아이폰 사용자들은...). apt-X HD 코덱의 경우 24bit/48kHz 고음질 음원까지 커버하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유저라면 무척 환영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선 제품 기능 중 가장 선호하는 ‘멀티포인트 커넥션’도 지원한다. 이 기능은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여러 대의 소스기기에 ‘등록’만 해놓는 ‘멀티 페어링’과는 전혀 다른, 훨씬 상위 개념의 기술임은 아마 본지 독자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랩탑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동시에 900 LEGACY를 페어링 해놓고 랩탑에 저장해 놓은 고음질 음원들을 900 LEGACY로 들으며 리뷰 기사를 적다 가도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오면 굳이 헤드폰을 벗을 이유가 없다. 알아서 스마트폰 페어링 모드로 자동 전환이 되기 때문. 오른쪽 패드를 두 번 툭툭 치면 바로 전화 연결이 된다. 진짜 정말 너무 편하다. 그런데 이 멀티 포인트 기능은 900 LEGACY 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대의 제품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헤드폰을 쓰고 벗는 동작에 따라 음악이 켜지고 꺼지는 스마트 재생 기능도 지원한다. 우측 패드의 터치 감도도 괜찮다.
900 LEGACY의 왼쪽 유닛에 전원 버튼(길게 누르면 블루투스 페어링, 두번 누르면 남은 배터리 용량 알림음), NC(한번 누름에 따라 노이즈캔슬링/트렌스페어린시 변경) 버튼이 있다.
주목할 만한 기술적 특성은 노이즈캔슬링이다. 이미 다양한 제품에서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시도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던 피아톤이었던 만큼, 노이즈캔슬링 제품이 널리고 널린 2021년 시점에서 일정 수준이상의 노이즈캔슬링 성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충분히 기대치에 충족했다. 노캔 헤드폰의 최강자 소니의 1000X 시리즈나 11단계의 노캔 조절 기능을 제공하는 보스 제품과 같은 괴수급들과 비교는 무리지만 가격대를 생각하면 그들의 8~90퍼센트 성능치 정도는 보여주기에 시끄러운 대중교통 출퇴근 환경에 노출된 사용자들이라면 큰 불만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전용 앱 없이 왼쪽 이어컵의 NC 버튼만으로 콘트롤이 가능한 점, 버튼을 누름에 따라 노캔 On/트렌스페어런시 On 두 가지로만 이용가능한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유저들도 있었다. 필자의 경우 소음 빡센(?) 것으로 유명한 서울지하철 5호선을 출퇴근용 교통수단으로 가장 오래 이용하는데, 900 LEGACY 정도면 그 시끄러운 마의 구간을 비교적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900 LEGACY의 착용감은 굉장히 우수하다. 헤드밴드와 이어패드에는 메모리 폼 소재가 사용됐다.
제대로 된 Fun Sound 튜닝. 음악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다
900 LEGACY의 사운드 퍼포먼스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다. 솔직히 이 제품은 사용용도나 출시목적을 생각해보면 극도의 플랫함을 추구하는 모니터링 성향으로 음색을 튜닝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저역과 고역의 데시벨을 높이는 V자 튜닝, 최근 들어 ‘펀 사운드’ 튜닝이라고 많이 불리는 음색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맞는 제품인데 관건은 적절한 ‘정도’를 찾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900 LEGACY는 그 정도를 아주 잘 찾은 제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저음의 양은 풍성하고 다소 없었고 고음역대가 어느정도 화사함을 더해주면서 음악 듣는 재미를 배가 시켜준다. 이 모든 영역의 튜닝이 과하지 않고 딱 적당하다. 헤드폰 입문자나 중급자 정도 되는 소비자라면 ‘와 음질 좋다’라고 바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고 헤드폰 특유의 공간감 표현과 각 소리와 악기들의 정위감, 디테일한 악기 표현력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펀 사운드 튜닝이라 표현을 했다 보니 900 LEGACY는 최신 K-POP, 힙합 음악을 들을 때는 흠잡을 데 없이 우수한 사운드 성능을 표현하는데, 리뷰를 하면서 900 LEGACY에 대해 주목한 부분은 바로 ‘록 머신’과 ‘게이밍 헤드폰’으로서의 가능성도 엿보았다는 점이다.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메탈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메스그램’의 정규 1집 앨범 ‘Cheers for Failures’의 수록곡 ‘Rockstar’의 주요 감상 요소인 묵직한 킥드럼과 베이스기타의 저음 리듬 파트 부분이 육중하게 잘 들리며 곡 중간중간 기타리스트 유식의 오른손 스트로크 900 LEGACY는 Made In Korea 무선 헤드폰의 우수한 성능을 증명할 수 있는 첫 번째 예시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사운드도 묻히지 않고 적절한 위치에서 선명하게 잘 잡아낸다. 육중한 중화기와 같은 디스토션 사운드를 내는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 아래에 탄력과 힘을 지닌 저음 리듬악기의 향연이 가득한 록 사운드를 좋아한다면 개인적으로 원픽으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운드 성능이다.
더불어서 저음역대 표현이 좋다보니 FPS 게임 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아무래도 레이턴시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게임 용으로 사용 시 기본 제공되는 3.5mm AUX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는데 재미있게도 이 경우 무선 연결 시 느껴진 펀 사운드 튜닝에서 조금 더 플랫한 성향으로 음색이 바뀌고 디테일은 더욱 살아나게 된다. 무선 연결을 하고 게임을 즐길 경우 900 LEGACY가 내는 적군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 지나치게 둔중한 느낌이었다면 유선 연결을 할 경우 그 밸런스가 딱 맞아떨어짐을 알 수 있었다. 이 제품을 구입한 헤비 게이머라면 가성비 좋은 USB 콘덴서 마이크 하나만 구비해 놓자. 굳이 게이밍 헤드셋 따로 안 사도 충분하다.
Massive한 배터리 성능으로 화룡점정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대단히 높은 배터리 효율이다. 노이즈캔슬링을 활성화 시켜도 무려 43시간의 배터리 타임을 자랑하며 유선 연결 후 노이즈캔슬링을 켜도 52시간, 거기에 10분 충전으로 4시간 사용이라는 대단히 효율 좋은 퀵 차지(Quick Charge)까지 지원한다. 데일리 헤드폰이라고 하면 900 LEGACY 정도 배터리 효율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상기한 여러 장점들을 30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으로 책정했다는 것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설명한 이 정도 스펙과 성능에 해외 브랜드 제품이었으면 이 가격은 아예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제대로 된 제품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피아톤의 의지와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노이즈캔슬링 무선 헤드폰 하나 들여놓을 생각하고 있다면 충분히 장바구니 1번에 넣어놓을 만한 제품이다.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뚜렷하게 많다. 추천 안 할 이유가 없다
#노이즈캔슬링헤드폰 #최강가성비 #피아톤 #900LEGACY #국산헤드폰 #멀티포인트페어링 #노이즈캔슬링
#PHIATION #크레신60주년 #강추헤드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