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의 본질을 이야기하다
프로듀서 차호영
본지를 비롯한 국내 유수의 미디어에서 오디오와 관련한 깊은 지식과 애정,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을 담아내는 글로 업계의 폭 넓은 사랑을 받는 리뷰어 차호영 백석대학교 교수를 오디오파이가 만났다. 사실 차교수는 타고난 오디오파일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경력을 쌓은 음악 프로듀서이자 기타 연주자, 그리고 음악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실용음악과 교수이기도 하다.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고민하는 기자에게 “프로듀서라고 불러주세요”라며 부드럽게 대화의 포문을 연 차호영 프로듀서와 인터뷰는 일종의 ‘고수’, 혹은 ‘장인’과의 대화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음악과 오디오 전반에 걸쳐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는 차 프로듀서와의 인터뷰는 오디오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실용적인 정보뿐 아니라 오디오의 본질에 대해 한번쯤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음악과 오디오 산업 전반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차 프로듀서의 노력이 꼭 빛을 발하게 된다면 대한민국도 ‘오디오 강국’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Q 안녕하세요. 음악을 맛있게 즐기는 방법 B-Side입니다. 소개 부탁 드립니다.
차호영 백석대학교와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음악 프로듀서 일을 하는 차호영입니다. B-Side의 오프라인 잡지인 오디오파이에서 몇 차례 글도 기고를 했었죠. 오디오와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Q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시고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커리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차호영 커리어 초창기에는 광고 음악 제작을 많이 했습니다. 만든 광고 음악은 수십 편 정도 되는데요, 대표작은 1990년대 후반에 배우 원빈씨와 김효진씨 김민희씨가 출연했던 이동통신 광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와 ‘슬픈 선물’을 기억하시는 분들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 광고뿐 아니라 랑콤 아시아 광고 등 해외 광고음악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뮤지션으로서는 가수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씨, 김현철 씨의 기타 세션으로 전국 일주 콘서트를 함께 한 적이 있고요.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의 프로듀서로 김장훈, 김민종, 조관우, 권진원 씨 등 음반 작업에 관여한 경력이 있습니다.
Q 기타 연주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차호영 중학생 때부터 치기 시작했으니 꽤 됐네요. 운이 좋게도 제가 기타를 치던 학창시절 기타를 집중적으로 전공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오랜 기간 치게 됐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게도 됐습니다. 독학한 실력치고는 운이 좋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호영 프로듀서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김현철과 같은 유명 뮤지션들의 세션 기타리스트로도 오랜기간 활동했다.
Q 말씀하신 것 처럼 교육 현장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차호영 2001년부터 교육일을 했으니 벌써 20년 정도 됐네요. 제자들도 음악 산업 현장에서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문세 밴드의 연주자들 중에도 제자들이 있어요. 사실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교육 일을 한 건 아니고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씨께서 교수님이 백석대 실용음악과 주임교수로 가시면서 권유를 받고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제 여러 커리어들 중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 됐습니다.
초창기에는 참 열악했어요. 번번한 연습실도 없었을 정도였거든요.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르치던 학생들이 교수 후배가 되어 학교에서 강의하는 나이가 어느덧 되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그 당시 얘기를 하면서 같이 늙는 것도 요즘에는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Q 기타리스트이자 음악 프로듀서로서 존경하는 뮤지션이 누군지도 궁금하네요.
차호영 젊은 시절에는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 팻 매스니(Pat Metheny)에 빠져살았죠. 제 인생 기타리스트 중 한 명입니다. 안타까운 게, 팻 매스니의 영혼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 라일 메이즈(Lyle Mays)가 얼마 전 타계를 했어요. 이제는 두 콤비의 명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없음이 참 아쉽습니다. 포플레이(Fourplay)는 제가 오디오테스트 할 때 항상 먼저 플레이 하는 밴드입니다. 시작부터 쏟아지는 디테일한 세션들의 하모닉스가 정말 일품인 밴드죠.
Q 한편으로 소문난 오디오 마니아시기도 합니다. 일로서 하는 음악이 아닌 취미로 즐기는 오디오에 입문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차호영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오디오에 취미가 있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마란츠 리시버와 JBL 스피커, 테크닉스 턴테이블 등을 접할 수 있었고 파독 간호사셨던 어머니가 결혼하시고 독일에서 귀국하실 때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레이블의 클래식 LP들을 가져오셨는데 특히나 카라얀이 지휘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수없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 제게 오디오의 매력을 전해준 음악은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1981년 뉴욕 센추럴파크 라이브예요. 당시에만 50만 관객이 모였던 정말 전설적인 공연입니다. 이 앨범은 LP로 정말 셀 수 없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LP는 버리지 않고 1000장 정도 추려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말 마니아 분들에 비하면 명함도 내밀기 힘든 숫자긴 하죠(웃음).
Q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오디오 브랜드가 있으실까요?
차호영 어렸을 때부터 JBL을 좋아했습니다. 특유의 호방하고 미국적인 사운드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JBL L시리즈는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이고 ‘JBL L96’, ‘JBL L112’,‘4312’등 유명한 제품들은 다 사용해봤습니다. 인피니티(Infinity) 초창기 모델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나사(NASA)출신 연구원 두 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스피커로 유명하잖아요. 한때 인피니티 제품은 5조 정도 소유할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2조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저 혼자 생각하는 음모론인데요(웃음), 인피니티가 너무 괜찮으니까 하만카돈에서 인피니티 회사를 통째로 사서 지금은 사실 카오디오 정도만 나오잖아요. 일부러 JBL 띄우려고 인피니티를 줄여 놓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근거는 없으니 오해는 하지 마세요(웃음). 프로오디오 장비로는 독일의 스튜디오 장비 업체 SPL의 포니터(Phonitor)헤드폰 앰프 좋아합니다.
SPL은 최근 하이파이용 제품도 나오고 있는데 평이 꽤 괜찮습니다. 최근에는 넓은 음장감과 빽빽한 음의 밀도, 자연스러운 소리를 재생하고 디지털 음원에서도 아날로그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스펜더(Spendor)에서 독보적인 느낌을 받아서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 오디오환경이 비록 척박하지만 국내 브랜드인 보우 어쿠스틱(Vow Acoustic)과 리비도(Libido) 등도 좋아하는 브랜드입니다. 아,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어큐페이즈(Accuphase)도 좋아하고 야마하는 오디오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악기 브랜드로서 좋아합니다. 처음으로 산 신시사이저가 야마하의 ‘SY77’이라고 1990년에 구입한 제품이거든요. 기본적으로 괜찮은 소리를 만드는 모든 브랜드를 다 좋아하고 너무 많은 브랜드를 좋아해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넓은 음장감과 빽빽한 음의 밀도, 자연스러운 소리 재생 능력으로 차호영 프로듀서가 '2019 올해의 기기'로 선정한 스피커 Spendor Classic 100
Q 오디오 제품을 선택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항목은 무엇이 있을까요?
차호영 밸런스와 가성비입니다. 오디오 기기는 소리를 낼 때 여러 가지 밸런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흔히 이야기하는 저,중,고음이죠. 이 음역대는 서로 물려있습니다. 어떤 하나가 과하면 다른 면은 모자라게 들리는 되는 게 밸런스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밸런스가 오디오에서는 정말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밸런스와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접할 수 없는 가격대면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좋은 하이엔드 제품이라도 비현실적인 가격은 고려대상에서 제외하는 편이에요. 제가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이 제가 생각하는 가성비 좋은 제품 영역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SPL같은 경우 PA가 아닌 하이파이 제품으로 섀시를 갈고 나오면 아마 제품 가격이 배로 뛸 거예요. 이런 게 제가 생각하는 오디오 제품의 좋은 가성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여전히 음반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시는 걸 선호하시나요?
차호영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당연히 LP로 음악을 듣는 걸 선호합니다. 과거의 CD는 너무 기계적인 음색이었고 같은 음원을 들었을 때 LP가 자연스럽고 중음이 과하지 않아서 작은 소리로 들어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울림을 들려주었어요. 예전 앰프 써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라우드니스(Loudness)라는 기능이 있어서 볼륨이 작을 때도 고음과 저음을 올려주는 기능이었어요. LP 음원이 그 자체로 마치 라우드니스 기능을 켠 것처럼 특정 음역이 강조되는 느낌이 있든요. 예전 같은 경우 CD는 중음이 퍼지고 상대적으로 고음과 저음이 묻히는 걸 발견해서 더욱 LP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요새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좋은 플레이어가 있으면 CD 음원은 굉장히 괜찮죠. 또 최근에는 편의성 때문에 음원으로 듣는 걸 선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CD는 몇 천장 정도가 소유하고 있는데 공간의 문제 때문에 처리 불가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음원으로 떠놓고 즐기고 있죠. 음원은 DSD 파일 수 천장 등 몇 십 테라 바이트가 있는데 그것도 관리가 어렵더라고요(웃음). 스트리밍 서비스 중에서는 타이달이 제일 편하더라고요. 다만 정말 듣고 싶은 음원을 스트리밍에서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직접 파일을 구하거나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사이에서 절충하며 음악감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All-In-One’형태의 오디오 제품이 모던 하이파이 시장에서 큰 인기가 있습니다. 눈 여겨 보신 제품이 있으실까요?
차호영 사실 깊게 눈 여겨 보지 않았다가 최근에 접해보니 깜짝 놀랄만한 제품들이 있더라고요. 성능이 그리 썩 좋지 않을 거라는 편견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발전이 됐구나 하고 놀란 경험이 최근에 많습니다. 특히 네임 오디오(Naim Audio)의 유니티 스타(Uniti Star)를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샬(Marshall)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사실 기타리스트 출신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조그만 기타앰프인줄 알았죠. 당연히(웃음). 간단하게 감상하는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더라고요. 최근 제품들이 그런 추세여서 참 고를게 많더라고요.
Q 포터블 음향기기 중 인상 깊게 사용하신 기기가 있을까요?
차호영 몇 년 전, 디지털 앤 아날로그(Digital & Anolog)의 ‘캘릭스 M(Calyx M)’의 성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스펜더 스피커에서 느낀 밀도와 힘이 DAP에서도 잘 느껴지더라고요. 헤드폰은 작업용으로도 정말 자주 쓰는데 역시 젠하이저 ‘HD650’ 헤드폰은 저에게 여러 면에서 가장 적정한 기기이고 워낙 초창기부터 썼고 인상이 좋았습니다. 베이어다이나믹도 좋아해요.’DT990 Pro’,.’’DT 880Pro’ 다 인상적이었죠. 오픈형이 HD650이라면 밀폐형은 오디오테크니카 M50이 작업용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인이어 이어폰은 아무래도 슈어 SE535를 첫 번째로 뽑아보고 싶습니다. 참, 최근에는 중국산 제품들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성능을 보여주는 데 DAP로 지샨(Zishan)799도 사용해보니 좋더라고요. 그런데 내구성이 너무 안 좋은 게 단점이더라고요. 그래도 저렴한 편이라 재구입해서 포터블한 환경에서 즐겨 쓰고 있습니다.

강남구 대치동의 마리아칼라스 헤이스의 청음실에서 차호영 프로듀서가 호평한 Spendor의 Classic 100 스피커로 함께 음악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Q 본지를 비롯해 여러 오디오매거진에 다양한 리뷰도 기고하셨을 텐데요, 혹시 Best & Worst 제품을 뽑아주실 수 있을까요?
차호영 올해 초 모 웹진에서 올해의 기기를 선정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저는 스피커로 스펜더(Spendor)의 클래식(Classic) 100, 지금 이 공간에도 있네요. 그리고 파인 오디오(Fyne Audio)의 F501를 선정했고 앰프로는 파라사운드(Parasound) Halo HINT 6 인티앰프(미국 영화음악 스튜디오, 앰프 설계 천재인 존 커리가 설계)를 선정했는데 AV리시버처럼 좀 투박하게 생겨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들어보니 파워도 좋고 괜찮은 소리를 내서 인상이 깊었습니다. SPL Director Mk2 프리앰프는 집에 가져가서 들었는데 다른 DAC를 오징어(?)로 만드는 느낌이었고요, M1000 모노블럭 파워앰프는 정말 깜짝 놀라는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제 생각에는 10배 가격 차이가 나는 앰프랑 붙어봐도 좋을 정도로 효율이 좋더라고요. Class A/B임에도 Class A에 맞먹는 성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캠브리지 오디오(Cambridge Audio) 40주념 기념 모델 Edge NQ 프리앰프와 Edge W 파워앰프도 제가 선정했습니다. 이 외에도 몰라몰라(Mola Mola)의 마쿠아(Makua) 프리앰프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를 뽑아보자면 SPL의 프리앰프 겸 DAC Director MK2를 베스트로 뽑아보고 싶네요.
10억에 가까운 가격 때문에 현실성은 없지만 리뷰한 기기 중 가장 비싼 윌슨 오디오의 WAMM(Wilson Audio Modular Monitor) 스피커는 10억에 육박하는 가격대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 소리는 정말 현실적이고 공연현장에 나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다만 유닛이 많다 보니 스윗스팟이 딱 한군데로 정해지면서 조금만 틀어져도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워스트는 뽑기 좀 어렵네요(웃음) 많은 리뷰를 하면서 최악 정도는 아니고 성능과 비교해 가격이 좀 비싸다는 느낌의 오디오 기기들이 약간 있었지만, 최근의 기기들은 대부분 가격을 떠나 빼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한민국 국적 오디오 제조사들의 약진도 최근 눈에 띄고 있습니다. 음악산업 현장에 종사하는 일원으로, 또 오디오 마니아로서 국내 오디오 제조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차호영 먼저 국내에서 오디오를 제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두 손 모아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퀄리티를 떠나 그 일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마니아로서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여러 제조사 중 오렌더 등 일부 제조사의 약진은 분명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 오디오 카테고리에서는 LG나 삼성도 하지 못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천 기술의 문제가 있습니다. 소비자 시장이 아닌 방송국이나 믹싱, 마스터링 스튜디오 등 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프로용 장비의 제조에서는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제조사가 없습니다. 또한,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음악 상품을 소비하는 데 있어서 다양성이 부족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내 음원 순위 집계에서 연주곡 등은 아예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음악 시장에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장르들이 있어야 관련 산업들이 발전하는데 수요가 없으니 그런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더 근본적으로는 인구가 적어서 그렇다는 문제까지 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부분만큼은 일본이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음향 부분에서 좀 더 과감한 투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중소업체나 개인제작자들이 이 부분을 다루긴 참 힘들죠. 한국의 유수의 기업들도 이런 전문 제작 장비나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원한 이야기이지만…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새 입시를 보러 오는 어린 학생들의 실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졸업하는 4학년보다 더 잘하는 1학년도 많이 있을 정도예요. 일찍부터 음악을 많이 접하고 연습을 이미 많이 하고 오다 보니 음악계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향상이 됐습니다. 제 시절에는 특A급 세션맨 들이 악기 별로 각각 몇몇씩 밖에 없었거든요. 이제는 실용음악과가 생긴 역사도 꽤 길고 하니 인력 자체가 많아졌습니다. 인재는 확보가 많이 되었어요. 하지만 무대가 적고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여전히 아쉽습니다. 그래서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이런 친구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음악을 제대로 정말 재미있게 깊이 있게 즐기는 층들이 많이 생겨야지 오디오 시장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오디오를 취미로 삼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취미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비싼 취미라고 인식 하고는 합니다. 이에 대한 프로듀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차호영 인간이 창작한 모든 예술과 문화가 다 대단하지만, 그 중에서도 음악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몰입해서 감상하면 그 깊이와 디테일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으며 의식의 발전과 함께 겸허함까지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음악을 몰입해서 들으면 다른 세계에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듭니다. 오디오는 음악을 듣는 도구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는 느낌도 듭니다. 단순 감상자가 아니라 제2의 연주자라는 심정으로 음악을 대하게 되면 가격이나 성능을 떠나서 자신의 오디오를 악기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연주자에게 악기는 절대적이고 감상자도 오디오를 그러한 수준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비싼 오디오가 여러 면에서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비싸다고 다 좋지도 않을뿐더러 적정한 오디오에 좋은 매칭을 하면 놀라운 느낌을 선사해 주기도 합니다. 뭐든지 어렵고 도전적인 것이 재미있지,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디오를 어렵게 할 수도 있고 쉽게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돈과 시간을 비롯한 정성도 어느 정도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차를 타도 그냥 새 차를 사는 사람도 있고 올드카를 구해서 나름대로 복원하고 개조하여 타는 사람도 있는데 그 차이는 독자들께서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은 다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좋아하는 일에 정성을 들일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오디오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정성을 들이면 어렵기는 하지만 훨씬 더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차호영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그렇듯이 어서 코로나 19가 잠잠해 지길 바랍니다. 공연 현장 같은 곳에서 타격이 좀 크거든요. 최근에는 특별히 장비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욕심이 있다기 보다는 제가 겪은 경험들을 많이 나누어주고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한국의 문화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많은데요,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K-pop만이 아닌 다른 좋은 음악도 많음을 알리고도 싶어요. 그리고 오히려 연주 실황을 직접 듣는 거 보다 오디오로 듣는 게 더 좋거든요(웃음. 더 많은 분들에게 오디오의 즐거움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Q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차호영 어렵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음악과 오디오를 위해 애써 주시는 것에 대해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 B-Side에 매우 감사 드립니다. 또 구독해주시는 독자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독자 분 들도 오디오파이와 B-Side를 지속해서 구독해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사람의 독자이자 리뷰어로서 좋은 콘텐츠로 또 인사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디오의 본질을 이야기하다
프로듀서 차호영
본지를 비롯한 국내 유수의 미디어에서 오디오와 관련한 깊은 지식과 애정,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을 담아내는 글로 업계의 폭 넓은 사랑을 받는 리뷰어 차호영 백석대학교 교수를 오디오파이가 만났다. 사실 차교수는 타고난 오디오파일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경력을 쌓은 음악 프로듀서이자 기타 연주자, 그리고 음악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실용음악과 교수이기도 하다.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고민하는 기자에게 “프로듀서라고 불러주세요”라며 부드럽게 대화의 포문을 연 차호영 프로듀서와 인터뷰는 일종의 ‘고수’, 혹은 ‘장인’과의 대화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음악과 오디오 전반에 걸쳐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는 차 프로듀서와의 인터뷰는 오디오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실용적인 정보뿐 아니라 오디오의 본질에 대해 한번쯤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음악과 오디오 산업 전반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차 프로듀서의 노력이 꼭 빛을 발하게 된다면 대한민국도 ‘오디오 강국’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Q 안녕하세요. 음악을 맛있게 즐기는 방법 B-Side입니다. 소개 부탁 드립니다.
차호영 백석대학교와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음악 프로듀서 일을 하는 차호영입니다. B-Side의 오프라인 잡지인 오디오파이에서 몇 차례 글도 기고를 했었죠. 오디오와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Q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시고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커리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차호영 커리어 초창기에는 광고 음악 제작을 많이 했습니다. 만든 광고 음악은 수십 편 정도 되는데요, 대표작은 1990년대 후반에 배우 원빈씨와 김효진씨 김민희씨가 출연했던 이동통신 광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와 ‘슬픈 선물’을 기억하시는 분들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 광고뿐 아니라 랑콤 아시아 광고 등 해외 광고음악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뮤지션으로서는 가수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씨, 김현철 씨의 기타 세션으로 전국 일주 콘서트를 함께 한 적이 있고요.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의 프로듀서로 김장훈, 김민종, 조관우, 권진원 씨 등 음반 작업에 관여한 경력이 있습니다.
Q 기타 연주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차호영 중학생 때부터 치기 시작했으니 꽤 됐네요. 운이 좋게도 제가 기타를 치던 학창시절 기타를 집중적으로 전공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오랜 기간 치게 됐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게도 됐습니다. 독학한 실력치고는 운이 좋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호영 프로듀서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김현철과 같은 유명 뮤지션들의 세션 기타리스트로도 오랜기간 활동했다.
Q 말씀하신 것 처럼 교육 현장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차호영 2001년부터 교육일을 했으니 벌써 20년 정도 됐네요. 제자들도 음악 산업 현장에서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문세 밴드의 연주자들 중에도 제자들이 있어요. 사실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교육 일을 한 건 아니고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씨께서 교수님이 백석대 실용음악과 주임교수로 가시면서 권유를 받고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제 여러 커리어들 중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 됐습니다.
초창기에는 참 열악했어요. 번번한 연습실도 없었을 정도였거든요.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르치던 학생들이 교수 후배가 되어 학교에서 강의하는 나이가 어느덧 되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그 당시 얘기를 하면서 같이 늙는 것도 요즘에는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Q 기타리스트이자 음악 프로듀서로서 존경하는 뮤지션이 누군지도 궁금하네요.
차호영 젊은 시절에는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 팻 매스니(Pat Metheny)에 빠져살았죠. 제 인생 기타리스트 중 한 명입니다. 안타까운 게, 팻 매스니의 영혼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 라일 메이즈(Lyle Mays)가 얼마 전 타계를 했어요. 이제는 두 콤비의 명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수 없음이 참 아쉽습니다. 포플레이(Fourplay)는 제가 오디오테스트 할 때 항상 먼저 플레이 하는 밴드입니다. 시작부터 쏟아지는 디테일한 세션들의 하모닉스가 정말 일품인 밴드죠.
Q 한편으로 소문난 오디오 마니아시기도 합니다. 일로서 하는 음악이 아닌 취미로 즐기는 오디오에 입문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차호영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오디오에 취미가 있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마란츠 리시버와 JBL 스피커, 테크닉스 턴테이블 등을 접할 수 있었고 파독 간호사셨던 어머니가 결혼하시고 독일에서 귀국하실 때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레이블의 클래식 LP들을 가져오셨는데 특히나 카라얀이 지휘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수없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 제게 오디오의 매력을 전해준 음악은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1981년 뉴욕 센추럴파크 라이브예요. 당시에만 50만 관객이 모였던 정말 전설적인 공연입니다. 이 앨범은 LP로 정말 셀 수 없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LP는 버리지 않고 1000장 정도 추려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말 마니아 분들에 비하면 명함도 내밀기 힘든 숫자긴 하죠(웃음).
Q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오디오 브랜드가 있으실까요?
차호영 어렸을 때부터 JBL을 좋아했습니다. 특유의 호방하고 미국적인 사운드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JBL L시리즈는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이고 ‘JBL L96’, ‘JBL L112’,‘4312’등 유명한 제품들은 다 사용해봤습니다. 인피니티(Infinity) 초창기 모델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나사(NASA)출신 연구원 두 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스피커로 유명하잖아요. 한때 인피니티 제품은 5조 정도 소유할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2조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저 혼자 생각하는 음모론인데요(웃음), 인피니티가 너무 괜찮으니까 하만카돈에서 인피니티 회사를 통째로 사서 지금은 사실 카오디오 정도만 나오잖아요. 일부러 JBL 띄우려고 인피니티를 줄여 놓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근거는 없으니 오해는 하지 마세요(웃음). 프로오디오 장비로는 독일의 스튜디오 장비 업체 SPL의 포니터(Phonitor)헤드폰 앰프 좋아합니다.
SPL은 최근 하이파이용 제품도 나오고 있는데 평이 꽤 괜찮습니다. 최근에는 넓은 음장감과 빽빽한 음의 밀도, 자연스러운 소리를 재생하고 디지털 음원에서도 아날로그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스펜더(Spendor)에서 독보적인 느낌을 받아서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 오디오환경이 비록 척박하지만 국내 브랜드인 보우 어쿠스틱(Vow Acoustic)과 리비도(Libido) 등도 좋아하는 브랜드입니다. 아,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어큐페이즈(Accuphase)도 좋아하고 야마하는 오디오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악기 브랜드로서 좋아합니다. 처음으로 산 신시사이저가 야마하의 ‘SY77’이라고 1990년에 구입한 제품이거든요. 기본적으로 괜찮은 소리를 만드는 모든 브랜드를 다 좋아하고 너무 많은 브랜드를 좋아해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넓은 음장감과 빽빽한 음의 밀도, 자연스러운 소리 재생 능력으로 차호영 프로듀서가 '2019 올해의 기기'로 선정한 스피커 Spendor Classic 100
Q 오디오 제품을 선택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항목은 무엇이 있을까요?
차호영 밸런스와 가성비입니다. 오디오 기기는 소리를 낼 때 여러 가지 밸런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흔히 이야기하는 저,중,고음이죠. 이 음역대는 서로 물려있습니다. 어떤 하나가 과하면 다른 면은 모자라게 들리는 되는 게 밸런스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밸런스가 오디오에서는 정말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밸런스와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접할 수 없는 가격대면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좋은 하이엔드 제품이라도 비현실적인 가격은 고려대상에서 제외하는 편이에요. 제가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이 제가 생각하는 가성비 좋은 제품 영역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SPL같은 경우 PA가 아닌 하이파이 제품으로 섀시를 갈고 나오면 아마 제품 가격이 배로 뛸 거예요. 이런 게 제가 생각하는 오디오 제품의 좋은 가성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여전히 음반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시는 걸 선호하시나요?
차호영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당연히 LP로 음악을 듣는 걸 선호합니다. 과거의 CD는 너무 기계적인 음색이었고 같은 음원을 들었을 때 LP가 자연스럽고 중음이 과하지 않아서 작은 소리로 들어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울림을 들려주었어요. 예전 앰프 써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라우드니스(Loudness)라는 기능이 있어서 볼륨이 작을 때도 고음과 저음을 올려주는 기능이었어요. LP 음원이 그 자체로 마치 라우드니스 기능을 켠 것처럼 특정 음역이 강조되는 느낌이 있든요. 예전 같은 경우 CD는 중음이 퍼지고 상대적으로 고음과 저음이 묻히는 걸 발견해서 더욱 LP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요새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좋은 플레이어가 있으면 CD 음원은 굉장히 괜찮죠. 또 최근에는 편의성 때문에 음원으로 듣는 걸 선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CD는 몇 천장 정도가 소유하고 있는데 공간의 문제 때문에 처리 불가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음원으로 떠놓고 즐기고 있죠. 음원은 DSD 파일 수 천장 등 몇 십 테라 바이트가 있는데 그것도 관리가 어렵더라고요(웃음). 스트리밍 서비스 중에서는 타이달이 제일 편하더라고요. 다만 정말 듣고 싶은 음원을 스트리밍에서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직접 파일을 구하거나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사이에서 절충하며 음악감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All-In-One’형태의 오디오 제품이 모던 하이파이 시장에서 큰 인기가 있습니다. 눈 여겨 보신 제품이 있으실까요?
차호영 사실 깊게 눈 여겨 보지 않았다가 최근에 접해보니 깜짝 놀랄만한 제품들이 있더라고요. 성능이 그리 썩 좋지 않을 거라는 편견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발전이 됐구나 하고 놀란 경험이 최근에 많습니다. 특히 네임 오디오(Naim Audio)의 유니티 스타(Uniti Star)를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샬(Marshall)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사실 기타리스트 출신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조그만 기타앰프인줄 알았죠. 당연히(웃음). 간단하게 감상하는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더라고요. 최근 제품들이 그런 추세여서 참 고를게 많더라고요.
Q 포터블 음향기기 중 인상 깊게 사용하신 기기가 있을까요?
차호영 몇 년 전, 디지털 앤 아날로그(Digital & Anolog)의 ‘캘릭스 M(Calyx M)’의 성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스펜더 스피커에서 느낀 밀도와 힘이 DAP에서도 잘 느껴지더라고요. 헤드폰은 작업용으로도 정말 자주 쓰는데 역시 젠하이저 ‘HD650’ 헤드폰은 저에게 여러 면에서 가장 적정한 기기이고 워낙 초창기부터 썼고 인상이 좋았습니다. 베이어다이나믹도 좋아해요.’DT990 Pro’,.’’DT 880Pro’ 다 인상적이었죠. 오픈형이 HD650이라면 밀폐형은 오디오테크니카 M50이 작업용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인이어 이어폰은 아무래도 슈어 SE535를 첫 번째로 뽑아보고 싶습니다. 참, 최근에는 중국산 제품들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성능을 보여주는 데 DAP로 지샨(Zishan)799도 사용해보니 좋더라고요. 그런데 내구성이 너무 안 좋은 게 단점이더라고요. 그래도 저렴한 편이라 재구입해서 포터블한 환경에서 즐겨 쓰고 있습니다.
강남구 대치동의 마리아칼라스 헤이스의 청음실에서 차호영 프로듀서가 호평한 Spendor의 Classic 100 스피커로 함께 음악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Q 본지를 비롯해 여러 오디오매거진에 다양한 리뷰도 기고하셨을 텐데요, 혹시 Best & Worst 제품을 뽑아주실 수 있을까요?
차호영 올해 초 모 웹진에서 올해의 기기를 선정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저는 스피커로 스펜더(Spendor)의 클래식(Classic) 100, 지금 이 공간에도 있네요. 그리고 파인 오디오(Fyne Audio)의 F501를 선정했고 앰프로는 파라사운드(Parasound) Halo HINT 6 인티앰프(미국 영화음악 스튜디오, 앰프 설계 천재인 존 커리가 설계)를 선정했는데 AV리시버처럼 좀 투박하게 생겨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들어보니 파워도 좋고 괜찮은 소리를 내서 인상이 깊었습니다. SPL Director Mk2 프리앰프는 집에 가져가서 들었는데 다른 DAC를 오징어(?)로 만드는 느낌이었고요, M1000 모노블럭 파워앰프는 정말 깜짝 놀라는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제 생각에는 10배 가격 차이가 나는 앰프랑 붙어봐도 좋을 정도로 효율이 좋더라고요. Class A/B임에도 Class A에 맞먹는 성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캠브리지 오디오(Cambridge Audio) 40주념 기념 모델 Edge NQ 프리앰프와 Edge W 파워앰프도 제가 선정했습니다. 이 외에도 몰라몰라(Mola Mola)의 마쿠아(Makua) 프리앰프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를 뽑아보자면 SPL의 프리앰프 겸 DAC Director MK2를 베스트로 뽑아보고 싶네요.
10억에 가까운 가격 때문에 현실성은 없지만 리뷰한 기기 중 가장 비싼 윌슨 오디오의 WAMM(Wilson Audio Modular Monitor) 스피커는 10억에 육박하는 가격대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 소리는 정말 현실적이고 공연현장에 나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다만 유닛이 많다 보니 스윗스팟이 딱 한군데로 정해지면서 조금만 틀어져도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워스트는 뽑기 좀 어렵네요(웃음) 많은 리뷰를 하면서 최악 정도는 아니고 성능과 비교해 가격이 좀 비싸다는 느낌의 오디오 기기들이 약간 있었지만, 최근의 기기들은 대부분 가격을 떠나 빼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한민국 국적 오디오 제조사들의 약진도 최근 눈에 띄고 있습니다. 음악산업 현장에 종사하는 일원으로, 또 오디오 마니아로서 국내 오디오 제조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차호영 먼저 국내에서 오디오를 제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두 손 모아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퀄리티를 떠나 그 일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마니아로서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여러 제조사 중 오렌더 등 일부 제조사의 약진은 분명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 오디오 카테고리에서는 LG나 삼성도 하지 못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천 기술의 문제가 있습니다. 소비자 시장이 아닌 방송국이나 믹싱, 마스터링 스튜디오 등 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프로용 장비의 제조에서는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제조사가 없습니다. 또한,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음악 상품을 소비하는 데 있어서 다양성이 부족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내 음원 순위 집계에서 연주곡 등은 아예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음악 시장에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장르들이 있어야 관련 산업들이 발전하는데 수요가 없으니 그런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더 근본적으로는 인구가 적어서 그렇다는 문제까지 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부분만큼은 일본이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음향 부분에서 좀 더 과감한 투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중소업체나 개인제작자들이 이 부분을 다루긴 참 힘들죠. 한국의 유수의 기업들도 이런 전문 제작 장비나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원한 이야기이지만…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새 입시를 보러 오는 어린 학생들의 실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졸업하는 4학년보다 더 잘하는 1학년도 많이 있을 정도예요. 일찍부터 음악을 많이 접하고 연습을 이미 많이 하고 오다 보니 음악계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향상이 됐습니다. 제 시절에는 특A급 세션맨 들이 악기 별로 각각 몇몇씩 밖에 없었거든요. 이제는 실용음악과가 생긴 역사도 꽤 길고 하니 인력 자체가 많아졌습니다. 인재는 확보가 많이 되었어요. 하지만 무대가 적고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여전히 아쉽습니다. 그래서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이런 친구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음악을 제대로 정말 재미있게 깊이 있게 즐기는 층들이 많이 생겨야지 오디오 시장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오디오를 취미로 삼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취미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비싼 취미라고 인식 하고는 합니다. 이에 대한 프로듀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차호영 인간이 창작한 모든 예술과 문화가 다 대단하지만, 그 중에서도 음악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몰입해서 감상하면 그 깊이와 디테일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으며 의식의 발전과 함께 겸허함까지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음악을 몰입해서 들으면 다른 세계에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듭니다. 오디오는 음악을 듣는 도구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는 느낌도 듭니다. 단순 감상자가 아니라 제2의 연주자라는 심정으로 음악을 대하게 되면 가격이나 성능을 떠나서 자신의 오디오를 악기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연주자에게 악기는 절대적이고 감상자도 오디오를 그러한 수준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비싼 오디오가 여러 면에서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비싸다고 다 좋지도 않을뿐더러 적정한 오디오에 좋은 매칭을 하면 놀라운 느낌을 선사해 주기도 합니다. 뭐든지 어렵고 도전적인 것이 재미있지,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디오를 어렵게 할 수도 있고 쉽게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돈과 시간을 비롯한 정성도 어느 정도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차를 타도 그냥 새 차를 사는 사람도 있고 올드카를 구해서 나름대로 복원하고 개조하여 타는 사람도 있는데 그 차이는 독자들께서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은 다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좋아하는 일에 정성을 들일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오디오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정성을 들이면 어렵기는 하지만 훨씬 더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차호영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그렇듯이 어서 코로나 19가 잠잠해 지길 바랍니다. 공연 현장 같은 곳에서 타격이 좀 크거든요. 최근에는 특별히 장비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욕심이 있다기 보다는 제가 겪은 경험들을 많이 나누어주고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한국의 문화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많은데요,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K-pop만이 아닌 다른 좋은 음악도 많음을 알리고도 싶어요. 그리고 오히려 연주 실황을 직접 듣는 거 보다 오디오로 듣는 게 더 좋거든요(웃음. 더 많은 분들에게 오디오의 즐거움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Q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차호영 어렵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음악과 오디오를 위해 애써 주시는 것에 대해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 B-Side에 매우 감사 드립니다. 또 구독해주시는 독자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독자 분 들도 오디오파이와 B-Side를 지속해서 구독해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사람의 독자이자 리뷰어로서 좋은 콘텐츠로 또 인사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